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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기사> 중앙일보 "치매 앓으셔서 혼자 못둬요" 지극한 손자의 효심
관리자
2004-12-18 오전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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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앓으셔서 혼자 못둬요" 지극한 손자의 효심 
 
[중앙일보 2004-12-10 21:12]  
 
 
[중앙일보 김방현 기자] ▶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돌보며 대학을 다니고 있는 정영철씨가 학과 실습시간에 할머니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있다. 김방현 기자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 

8일 오전 9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대전보건대학 강의동. 이 대학 노인보건복지과 1학년 정영철(28)씨가 휠체어에 할머니(84)를 태우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같은 과 학생들은 일제히 "할머니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맞는다. 


할머니도 가볍게 손을 흔들며 답례한다. 정씨가 수업을 받는 동안 할머니는 바로 옆 의자에 앉아 동화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쉬는 시간이 되자 정씨는 할머니를 화장실로 데리고 간다. 치매 증세가 있는 할머니가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 학과 실습시간에는 학교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할머니를 목욕시키고 안마도 해준다. 동료 학생들도 이젠 할머니와 친해져 우유.김밥 등을 사다주며 말벗이 되기도 한다. 


정씨는 올해 대전 혜천대(전문대)임상병리과를 졸업한 뒤 보건대학 노인복지과 정원 외 전형에 응시, 합격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하면 할머니를 모실 사람이 없는 데다 살아계시는 동안 더 잘 모시겠다는 생각에 노인복지과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정씨가 할머니와 함께 캠퍼스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혜천대 3년 때부터. 


평소 건강하던 할머니가 4년 전 교통사고로 허리와 다리를 다친 뒤 치매와 관절염을 앓기 시작했다. 혼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24시간 할머니를 돌볼 수 있는 간병인이 필요했지만 충남 금산에 있는 정씨의 부모도 몸이 불편한 데다 생계를 위해 상업과 농사일을 같이하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형편이었다. 


정씨는 부모에게 "대전으로 모시고 가서 할머니를 돌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정씨의 부모는 "공부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할머니 수발까지 할 수 있겠느냐"며 말렸다. 그러나 아들이 뜻을 굽히지 않자 승낙했다. 정씨는 학과 교수와 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양해를 구하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그는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는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도와 함께 일도 해 주시고 내가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정이 많이 들어 모시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할머니가 수업 중 대.소변을 못 가리는 경우도 있어 짜증을 내기도 했으나 정씨의 효심에 감동, 차츰 자신의 일처럼 이해하게 됐다. 


대전 서구 삼천동 전세방에서 할머니.동생(26)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졸업 뒤에도 사회복지시설에 취직, 할머니를 모셔 와 직접 간병하며 여생을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우리 손자가 너무 잘해 줘 불편한 게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학과 이민표(43.여)교수는 "정씨의 효심은 부모 부양의식 등 효도의 개념이 희박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bh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