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관련사례
아버지의 치매
관리자
2005-07-05 오후 4:08:00
21095
치매!
도대체 왜 ! 한숨과 원망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시간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결코 반갑지 않은 해괴한 병마.
이 해괴한 반갑지 않은 증상이 아버지께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난데없이 엄마께 "이혼을 했는데 왜 눈앞에 있어. 왜 내 집에서 살아? 당장 나가 네 집으로 가 고얀 것 같으니" 엉뚱한 말씀에 그저 황당할 뿐, 어이가 없었습니다.
엄마를 미워하고 곁엔 오지도 못하게 막무가내로 나오시는 아버지.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 초기증세였답니다.
엄마가 밥상을 차려들고 들어가면 네가 나를 어떻게 하려고 밥에 무엇을 자꾸 넣었다며 도통 남이 주는 음식을 거들떠도 안 보시는 아버지.
혹여나 배고프시면 드시겠지…. 그러나 여전히 상 위의 음식은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모두가 어이없어 할뿐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의심하고 이상한 행동을 번번이 되풀이하시는 아버지께 나는 그저 화를 내며 정신 좀 차리라고 울며불며 난리를 쳐 봤지만 달라질게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 병원에 모시고 가서 뇌사진을 찍어보니 한쪽 뇌가 쪼그라들고 있는 상태인데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 하시는 병원 측의 말씀을 듣고서야 ‘이것이 치매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가족들의 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엔 자꾸만 밖으로 나가서 연락이 두절되기 시작했어요.
왜 그리 순식간인지 잠시 자리만 비워도 어느 틈엔가 사라져 타 동네로, 아니면 아무 차나 세워 어디어디 데려다 주라시며 떼를 쓴 일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행방이 묘연해 바쁜 농사일도 제쳐두고 온 동네 주민들이 아버지 찾기에 나선 적도 부지기수였죠. 참으로 주민들께 고맙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한 마음 지금도 항상 변함없어요.
직장 다니던 여동생도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왔고, 남동생도 수시로 집엘 들려 살펴야 했어요.
어느 날인가는 행방불명되신 아버지를 찾아 온 식구와 마을 어르신들도 모두 찾아 나서 주셨답니다.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어 애가 타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는 동네 아저씨의 말씀. 버스 타고 시내로 나가려는데 아버지께서 버스 안에서 약간은 겁에 질린 듯, 쫒기는 듯 안색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있길래 볼일을 미루고 버스에서 아버지를 내리려는데 내리지 않으려는 아버지를 혼자선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아 운전기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내려 지나는 택시를 타고 올 수 있었다고. 아저씨를 보는 순간 얼마나 힘겨웠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조마조마 하고 불안하고 그저 이웃에게 미안했습니다. 
가족들과 의논한 결과 나가시는 것을 막아 보자는 취지로 요양시설로 모시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와 친정 주변 곳곳을 찾아 우리 형편에 맞는 시설을 찾아봤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한 달 한 달 들어가는 돈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답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다녀보았었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남편의 도움으로 서울 모 요양 센터도 가보고 우리 집 가까운 시설도 찾아 봤습니다. 시설 관계자와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내 자신이 싫고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내 아버지가 저리 되셨다고 남의 손에 아니 아버지를 시설에 버려야 한다니. 두 눈엔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 내렸습니다. 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시설을 찾아갔던 것 자체가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집 밖으로 나가시려는 아버지와 못 나가게 하려는 가족과의 줄다리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언니네와 형부,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틈만 나면 시골로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딸아이는 "외할아버지는 이상해. 이상해." 이렇게 물어옵니다. 아파서 그러시는 거냐고.
아버지는 또 한 가지 증세를 보태고 계셨습니다. 주방을 아버지만의 공간으로 점찍으시고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말린 고추, 콩, 갖가지 잡곡들을 그곳에 쌓아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고 어느 물건이든 손도 못 대게 하시는 증세를 보이셨습니다. 우선 가족들이 끼니 해결을 해야 하는데 주방에 들어설라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시는지 호통과 힘을 합세하여 막무가내로 식구가족을 힘들게 하셨답니다. 
증세가 자꾸 변하고 더해지셨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밖으로의 출입이 뜸해지는 것만으로도 힘을 줄일 수 있었죠. 아무튼 집안에서만 계신다면 더 바랄게 없다 생각했으니까요.

이상한 말씀 터무니없는 행동.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 아버지. 그러나 우리로선 방법이 없었죠. 약 한 달여 만에 다시 아버지를 찾아가니 이발을 하지 못해 길어진 머리, 덥수룩한 수염. 아버지의 행색은 아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발 좀 하라 해도 막무가내 딴소리만 하시는 아버지께, "아버지 제가 머리 잘라 드릴까요?" 아버지 눈이 동그래지십니다. "이쁘게 잘라 드릴게요." 우선 안심을 시켜드리려 부드럽게 이야기하니 뜻밖에, "그럴까? 예쁘게 해야 한다." 휴 다행이다 싶어 아버지 마음 변하실까봐 서둘러 보자기를 두르고 빗과 가위로 조심조심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흰머리가 제법 많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언제 또 딴소리 하실까 조바심을 하며 머리를 잘랐어요. "아버지 20년은 젊어 보이시네요." "그래! 예쁘게 잘라라."하시며 수줍게 웃으신다. "이제부터 아버지 머리는 제가 예쁘게 해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이런저런 칭찬과 비위 좋은 말만을 해가며 살살 달래 머리를 자르고 깨끗이 감겨 드리고 나니 그저 솜씨는 없지만 깔끔했습니다. 수염도 손질을 해드렸고 혹 살이 면도날에 다칠까 피라도 나면 어쩌지? 떨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다듬었죠. 
손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시는 아버지 아기같이 웃으시며 수줍음을 더하는데. 눈물이 왈칵 The아지고 말아 목이 메어왔습니다. 고생만 하시던 아버지.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마을에 둘도 없는 효자라고 어른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던 아버지께 왜 이런 변고가…. 제발 조금이라도 좋아지시기를 빌고 싶었죠.
누구의 호의도 받아들이지 않고 남이 주는 음식은 절대 드시려 않고 당신 손수해서 드시는 음식만을 믿고 드셨죠. 하루는 아버지가 냄비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기에 살짝 보았더니 양념도 되지 않고 배추 잎에 쌀을 넣어 멀겋게 끓이는 데 차마 먹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의심에 의심을 더하고 또 엉뚱한 말씀을.
전용비행기도 가지고 계시고 세계일주도 하시는 아버지. 마음인지 상상인지 꿈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해지시고 싶으신 게다.
유일하게 내가 해드리는 음식과 내말을 들어주시는 아버지. 한 달에 한 번씩 아니면 두 달도 좋고 이발을 손수 해드렸습니다. 
"다음에 또 와서 아버지 머리 이발해 드릴게요." 그렇게 약속하고 집으로 온지 거의 한달. 흰 눈이 엄청 많이 온다. 왠지 아버지가 걱정되어 잠을 설치었습니다. 치매와 동무가 되어 누구도 못 믿고 누구도 받아주지 않으시던 아버지께선 갑작스런 추위와 한파와 싸우시다 결국엔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아버지 소식을 접하면서 사실이 아닌 부정으로 몰아가고 있는 내 마음은 '이발할 때가 또 되었는데..' 믿기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일거다.
요즘의 영하의 한파로 흰 눈이 오면 자꾸만 수줍게 웃으시던 아버지 얼굴이 떠오릅니다.
사랑해요 아버지 ~

치매 환자를 모시는 분들께 제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절대 꾸짖지 마시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세계로 같이 들어가 조금이라고 이해하고 그분 현재 연령 상태에 맞춰봐 주세요. 어린아이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분 마음에 누군가 편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 그래도 집에서 모실 수 있다면 다행이고요 시설에 모신다하더라도 자주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