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관련사례
치매엄니와 막내딸의 놀이
관리자
2005-09-13 오후 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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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4시28분.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엄니를 들여다 보구 화장실을 가기위해 일어나서 조심조심 발을 옮겨놓는다.
이크 밟았다.
조심스레 스위치를 켜구 여기저기 방바닥을 들여다보니 두 군데에 흥건하게 물이 고여 있다.
12시 반까지 4번이나 소변을 보구 주무셨는데 내가 깜박 잠이 든 4시간 동안에 두 번이나 일어나셔서 소변을 보셨나보다. 당뇨가 있으셔서인지 항상 옆에 물을 끼고 사셔서인지 두 세 시간에 한 번씩은 소변을 보신다. 5년 전부터 요실금이 심해 하루면 대여섯 번씩 옷을 갈아입으셔서 기저귀를 사다 놓구 채워드리려 했으나 강력하게 싫다고 하셨다. 2년 전부터는 증세가 진행이 빨라지면서 자연스레 기저귀 착용이 가능했으나 85년 동안 살아오신 기억이 있어서인지 소변이 마려우시면 참지를 못 하시면서도 옷과 기저귀를 내리시곤 한다.

사람은 잘 먹고 잘 싸면 건강한거라고 어르신들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그런데 치매 환자들과 함께 사는 가족들한테는 너무도 힘든 건강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유독 드시는 걸 즐겨하시는 엄니를 못 드시게 할 수도 없구 왜 그리도 드시고 싶은 것도 다양하게 많으신지 요즈음엔 젊어서 제일 좋아하시던 땡감(익지 않은 감)을 감나무에서 따오라고 보채신다. ‘휴~이 겨울에 땡감을 어데서 구해오라고 그러시는지’, 워낙 답답해서 딱딱한 단감을 한 꾸러미 사다드렸더니 한 입 베어 무시더니 화장대 위로 던져버리시면서 마구 화를 내신다. 한 가지에 집착을 하시면 그게 해결이 되어야만 화를 푸시는 울 엄니.
오늘은 점심을 드시다가 환하게 웃으신다.
“엄니 왜? 뭘 보고 웃으시는데?”
“저거 봐라. 저 늙은이도 나 밥 먹는 것 그대로 따라서 밥 먹는다. 쭈글쭈글 꺽정스럽게도 생겼네. 이리오시오. 이리와 나랑 여그서 같이 먹게.”
뜨다만 밥알을 수저에 올려놓은 체 손 사레를 치시면서 오랜만에 활짝 웃음을 보이신다.
“누군데?”하고 어머니 옆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화장대 위 네모난 손거울로 비춰지는 당신모습을 보구 그러신다. 거울을 뒤로 돌려놓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걸 다 잊으시고 열심히 점심을 드신다.
“너그 아버지 진지는 드렸냐? 어디 가서 안 보이신다냐?”
“응, 아버지 진지 드시고 논에 나가셨어.”
“시방 몇 시간디?”
“12시 30분. 엄니 밥 먹는 시간.”
“너그 오빠 배고플틴디 아직 군대서 안 왔쟈?”
“응, 아직 멀었어, 제대하려면. 지금은 군대서 밥 많이 줘서 배 안 고프데여.”
밥상머리에 앉아 엄니와 나는 과거를 오락가락하며 알지 못하는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2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요즈음엔 자주 등장을 하신다. 34년 전에, 갓 돌 지난 아들을 두고, 29살의 나이에 엄니가슴에 멍을 들여 놓구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큰오빠도 아버지와 함께 자연스럽게 엄니 주위에 맴돌고 있다. 교통사고로 25년 동안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마비의 둘째오빠를 당신이 20년 동안 먹이고 씻기고 돌봐주셨건만 지금 엄니 기억 속에 있는 둘째오빠는 아직 총각이다. 막내딸인 내가 당신 앞에서 늙어가고 있는데도 8살 위의 오빠는 아직 총각이라 한다. 29살의 손녀딸이 할머니 보구 싶어 며칠 전에 다녀갔다.
“할머니 내가 누구게?”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시더니 나양이란다. 나양은 올케언니를 처녀 적에 부르던 애칭이다. 당신이 손수 받아내 애지중지 물고 빨며 키우셨던 손녀딸이건만 지금의 엄니 기억 속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할머니 나, 할머니 손녀딸. 제발 나 좀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하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있다.
“왜 울어? 우리아들 어디 갔어? 우리아들 장가 좀 보내게 참헌 색시 있으먼 데리고 와봐. 우리 집에 시집오면 괜찮을건디..”
“호랭이 밥주었냐?” 하시며 금방 다른 말씀을 하신다. 울 엄니는 동물도 많이 키우신다. 개 소 돼지 닭 심지어 호랑이까지 키우고 계신다. 손님들이 오시면 나눠주라고 인심까지 쓰신다. 도시에서는 그것두 상가건물 안에서는 아무것도 키울 수 없다고 하면 당신이 손수 키우고 있는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고집을 내신다. 둥그런 울타리를 만들어 잘 기르고 있다고 하신다.

어머니 이불 한쪽에는 조그마한 요정 아기도 함께 살고 있다. 베개를 이불로 꼭꼭 덮어 놓구 가끔은 밥을 먹자고 깨우기도 하신다. 당신의 밥 수저에 밥을 떠서 베개에 대고 먹으라고 하시기도 한다. 혹여 베개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애기 어데 두었냐”며 소리 높여 부르신다.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지만 치매어르신은 엄니가 처음이다. 엄니의 이상한 행동과 말에서 정말 많은 상처를 받고 힘들어했었다. 지금은 가족들도 모두 엄니를 이해를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다. 대화를 할 땐 엄니의 사고에 맞춰서 응해드리고 가끔은 딸과 아들 손자 손녀들의 이름을 따라하도록 유도도 해보며 최소한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은 잊지 않게 해드리려 노력을 하고 있다. 매일 함께 마주하는 우리 가족들은 모두 알아보신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와서 엄니와 놀아주는 큰언니도 잘 알아보신다.

친정엄니는 살아오시면서 큰 충격을 여러 번 당하셔서 치매라는 병마와 싸우고 계신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시부모님들께서는 시골에서 별 충격 없이 순탄하게 사시다 가셨다. 그래서인지 가시는 날까지 정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성격이 유순하셨던 할머님께서는 96살에 곱게 돌아가셨구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구 오직 땅 파는 일만 열심히 하셨던 아버님 또한 48살에 중풍을 맞아 거동이 조금 둔하긴 하셨지만 76세 가시는 날까지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이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유독 자존심이 강하고 활동이 많으셨던 어머니셨는데 두 아들을 어이없는 사고로 그리 충격을 받으시더니 부끄럽다하시며 모든 활동을 접어버렸었다.
당신의 모든 삶을 둘째오빠한테 다 쏟아 부으면서 행여 일어서서 걸을 수 있을까. 손이라도 움직여 밥만이라도 떠먹을 수 있을까, 희미한 기대를 하며 20년 세월을 살아오시다가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한번 쓰러지신 후엔 4살배기 아이로 변해버렸다. 엄니는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신지도 모른다. 살아오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계신 지금이 엄니한테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고 있다.
지금의 힘든 끈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를 엄니의 과거 속에서 엄니와 함께 할려 한다. 육체적인 고달픔은 이겨나갈 수 있다. 정신적으로 엄니를 이해시키려 하던 과거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그냥 살아갈련다. 나쁜 딸년이 되어 엄니와 소꿉놀이하면서 이대로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