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관련사례
아가, 아가... 고맙데이..
관리자
2005-07-23 오후 1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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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닌 몹시도 된 시집살이를 했다. 아버진 공무원으로 도시에서 근무하고 계셨고, 어머닌 할머니와 함께 고향에서 농사를 일구셨다고 한다.

내 어머니.. 꽃다운 열아홉에 시집을 와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곁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할머닌 살림을 따로 내주지 않았고, 아버진 혼자 도시에서 공무원생활을 하셔야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매운 시집살이는 시작되었다. 처녀 적에 일 잘한다는 말이 동네 소문 날만큼 잘했던 어머니.. 자기 일이 있어서 경력이 쌓일 수 있는 요즘의 그런 일이 아닌 당시 일 잘한다는 말은 밭일, 집안일, 음식솜씨, 바느질 솜씨였었다. 
“느거는 그런 소문나봐야 좋을 꺼 하나 없응께 늬들은 공부나 열심히 혀..” 
어릴 적 집안일은 가르쳐 주시지 않으려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마음만큼 그런 말은 살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어머니의 삶이었다.

시집와서 아들 귀한 집에 첫 아들을 안겨준 엄마, 
“자고로 여자는 아들을 낳아야 되는 겨. 아들만 낳아봐라. 집안에 복이 굴러오는 뱁이니끼니.”
할머니의 말씀대로 다행히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면서 엄만 아버지 곁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을 낳아도 편해지기는커녕 모든 일거리는 엄마 독자치가 된다는 건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몇 천 평이 되는 밭과 농사, 아들 뒤치다꺼리, 당시 마을에서 알아주던 부자였던 집안의 각종 대소사 모두 일일이 엄마의 손을 거쳐서야 일이 되었을 만큼 엄만 닥치는 대로 일했다.
누가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이라고 했던가.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을 만큼 순진했던 엄만 다들 그러고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더군다나 집안의 장손이라며 유독 큰오빠를 예뻐했던 할머니였으나 있는 집이었지만 돌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고, 어머니 마음대로 불쌍한 사람한테 밥 한 끼 적선할 수 없었을 만큼 무서웠던 할머니셨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 없다고 나이가 들고 집안이 기울면서 어머닌 할머니를 모시고 도시로 나왔다. 다른 도시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와 살림을 합치면서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곳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당시 아파트는 지금처럼 도시가스로 된 것이 아니라 연탄을 때는 아파트였었다. 
큰방과 작은방, 방 2개였었기에 작은 방은 할머니차지였고, 큰방엔 나와 오빠, 부모님이 줄줄이 잠을 잘 수 있었던 곳이었다. 넉넉하게 살다 가세가 기운 탓에 할머닌 그때까지도 잘살았던 때를 기억하고 반찬이 좋지 못하고, 생선 한 점 없으면 숟가락을 대지 않으셨다. 
“이기 뭐꼬? 그래, 니는 시어미가 풀만 묵고 죽으란 말이제? 으잉? 이기 이젠 시어미를 죽으라고 빌고 있는 갑제?” 

어느새 할머닌 갖은 욕설과 반찬투정에 몸에선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었다. 그게 어린 내겐 알 수 없었으나 한참 뒤 할머니께 치매가 왔다는 걸 알았다.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서 시골의 많디 
많던 땅과 소, 닭 등 짐승들, 일을 돕던 사람까지 있었다는데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도시로 나온 지 채 한해가 되지 않아 할머닌 치매를 앓기 시작하셨다. 

알 수 없는 냄새, 몇 번이나 뒤엎어지는 밥상, 그 밥상이 엎어지고 다시 밥상을 차리는 엄마 곁에서 엄마의 눈물을 본 게 수도 없이 셀 수 있을까마는 엄만 군말 없이 다시 상을 차렸고, 겨우 할머니가 밥 먹는 걸 보시곤 일을 나가시곤 했다. 

다행히 할머닌 다른 치매할머니처럼 집에서 나가시진 않으셨다. 작은방을 할머니의 터로 삼아 집안에서 호령을 하거나, 밥상을 엎고, 남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소리로 울며불며 엄마의 행동에 
대해 욕과 흉을 보셨다. 그럴 때면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큰오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큰오빠가 와서 할머니 손을 잡고 얘길 하다 보면 어느새 그랬냐는 듯 얌전히 식사도 하시고, 조용히 잠을 청하시곤 했다.
 
“느그 할매가 장손이라고 월매나 조아라캤노. 동네잔치를 했지. 니 태어날 때..그러더니만 니를 봐야 안정이 되는 갑다..” 
그렇게 매운 시집살이를 했는데, 왜 할머니가 밉지 않았을까. 
“엄마, 할매를 그냥 촌에 모시면 안 되나? 부끄럽다 아이가. 이 무슨 동네망신이고.. 맨날 고래고래 고함이나 치고, 욕지꺼리나 해대고..그렇다고 엄마한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 할매한테 말 한마디 좋은 소리 들어봤나? 그런 적도 없다 아이가.” 
언니의 짜증과 투정 속에서도 엄마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내도 나이를 묵고, 느거 할매도 나이를 묵는 거리. 미운정이 고운정보다 더 무서븐 거 니는 모를 끼다. 내도 늙는 거 아이것나.. 느거, 내가 늙으면 그리 할끼가? 안글나?..”

그 후 더 이상 언니의 투정은 없어졌고, 할머닌 흔히 말해 벽에서 변 냄새가 날 만큼 안 좋아 지셨다가 엄마가 바닷가 물길질을 하러 간 사이 몰래 집을 나가셨다. 하루 온 종일 찾아도 안보이던 할머닌 아파트 뒷산 중턱의 밭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찾게 되었다.
그 이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된 할머닌 올바른 정신이 잠깐 들어왔을 때 삼십 년 시집살이를 한 어머니께 단 한마디 말씀을 남기신 후 돌아가셨다. 

엄마를 눈물바다로 만들게 했던 그 한마디..
“아가..아가...고맙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