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관련사례
새벽에 온 전화
관리자
2005-07-15 오후 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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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하면서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경이었다.
찾아뵌 지 오래된 한 친구의 어머니셨다.
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이고, 그의 모친은 몇 년 전부터 약간 치매가 있으시다.
"어무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 하고 물으니
"철수야, 내가 지금 집을 못 찾겠다, 우짜꼬?" 하신다.
한 겨울에 새벽 다섯 시... 이 추운 시간에 어디를 헤매시나 싶어 잠이 확 달아났다.
해가 뜨려면 두어 시간이나 더 있어야 할텐데, 노인네가 겨울 이 시간에 새벽운동을 나서셨나... 깜깜한 산 속에서 길을 잃으셨나 ...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가며 계속 여쭈어 보았다.
“어무이! 지금 거기가 어디쯤 입니까?” 
“어무이!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까?”
“근처에 큰 건물 같은 건 안 보입니까?” 등등...
어머님은 계속 "여기가 어딘지 모르것다", "아무도 안보이네", "우째야 될꼬" 하신다.
내 나이 나도 모르는 새 오십대 중반을 넘었으니 지금 어머님 연세 칠십 대 후반이시다.
얼마 전에 한 번 헤아려 보았더니, 친구들 중에 어머님 계신 친구가 3분의 2정도였고, 그 어머님들 중에 몇 분은 치매가 있으셨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치매 있는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내 친구들은 모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어머님만 계시는 친구들이었는데, 친구들은 모친이 매일 멀쩡하시다가도 가끔 치매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반복되신다고들 한다.
60, 70년대 나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걸핏하면 우루루 친구들 집으로 몰려갔었다. 니 집, 내 집 할 것 없이 돌아가며, 놀러도 가고 시험공부 하러 가기도 했는데, 밤에 함께 자고 다음날 바로 학교로 가는 날도 많았다.
친구의 모친은, 엊그제 일상사는 금방 잊으셔도 사십 년 전 애먹이던 자식 친구들 이름은 아직 기억에 남아 계신가 보다. 생각해보면 6, 70년대는 대부분 가난하던 시절.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님들이 양식을 늘이려고, 밥 지을 때 보리쌀은 물론, 고구마나 무 같은 것들을 넣은 밥을 짓거나, 때로는 밥 한 두 그릇으로 김치국밥 한 솥을 만들어 여럿이 나누어 먹는 일도 흔했다.
 
그런 중에도 한창 커가는 자식 친구들이 몰려와서는 먹기는 또 얼마나 먹어 대는가. 그래도 귀찮은 표정 하나 없이 모두를 내 자식처럼 거두어 먹이시던 어머님들...
그 어머님 중의 한 분이 이 겨울밤 어디를 헤매고 계시는지...
“어무이! 제가 모시러 갈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요, 혹시 누구라도 사람 보이는가 잘 살펴 보시이소”
그러자 잠시 뜸을 들이신 어머님 말씀이 "가마이 있어 바라, 누가 이를 가네... 저기 이 갈고있는 사람이 이서방이가 ..." 하신다.
형편에 따라 오랫동안 친구의 막내여동생이 모친을 모시고 살아 왔는데 그 여동생의 남편 되는 사람이 이서방이다.
이를 갈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하나하나 짚어 여쭈어 보았더니 머뭇머뭇 답이 나오신다. 
친구의 여동생은 새벽 기도를 나갔는지 집에 없고, 어머님 혼자 어찌어찌 나에게 전화를 거신 모양인데, 통화 중에 자고 있는 사위의 이 가는 소리가 들리신 것이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면서 아이 달래듯 어머님을 안심시켜 드렸다.
“어무이! 지금 집에 계시네요. 걱정마시이소, 영희가 새벽기도 하러 갔는데 쪼끔만 있으면 들어 올 겁니다.”
"그렇나? 영희가 올란가 ?" 하시면서 마음이 놓이시는지 전화를 끊으신다.
그러고 이십 분도 채 안되어 다시 전화가 와서
"철수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것다, 우짜꼬?" 하셨다.
이제 상황은 알았지만 그래도 처음 전화 받는 것처럼, 걱정해 드리는 어조를 계속하는 것이 낫다. 
어머님은 조금 있으면 따님이 들어 올 거라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다시 "그렇나? 영희가 올란가 ?"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신다.
그 날 아침 전화를 네 번 해 오셨지만, 어머님은 전화 할 때마다 조금 전에 당신이 전화 하셨다는 것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 "여기가 어딘지 모르것다, 우짜꼬" 하셨다.
남편 사별 후 혼자서 자식들을 하나하나 모두 결혼시키신 장한 어머님. 
막내 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성인이 된 지금, 허허로움을 느끼시는지, 한겨울의 긴긴 밤, 방 안에 앉아 계셔도, 깜깜한 밤바다에 서 계신 것처럼 언뜻언뜻 외로움이 밀려오신 것은 아니실런지, 인간들은 누구나 늙게 되어 있는 것이고, 자기만은 절대 치매가 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 것.
치매 노인들의 외로움이, 무력한 인간들의 고독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겨울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