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관련사례
치매, 우리 집에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관리자
2005-07-13 오후 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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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이렇게 여유 있게 글을 적고 있지만 6년 전, 그때는 어떻게 지내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요즈음 우리 어머니 보물 1호가 낱말카드입니다. 애들 처음 한글 배울 때 사용하는 단어카드처럼 제가 만들어서 매일 공부하라고 드렸는데 어머니는 하루에 2번 반복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카드에는 당신 이름, 아들, 며느리, 손자 이름, 집 주소, 전화번호, 일상 생활용어,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전화, 추워요, 물 주세요, 배고파요 등등..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요. 그 덕분에 이젠 말씀도 제법 잘 하시고 웬만한 표현은 하십니다.

남들이 말하는 중풍과 치매. 그것이 어머니를 찾아온 때는 6년 전. 한밤중에 어머니의 전화가 와서,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말이 잘 안 된다 하시기에 놀라 달려갔더니 중풍초기 증세를 보였습니다. 놀랐습니다. 설마..... 설마 우리어머니가... 우리 집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음날 병원 문 열자마자 갔죠. 뇌졸중으로 중풍과 치매 증세를 보인다했습니다. 세상에...그 날 바로 병원에 입원하고 초기 3개월이 중요한 고비라고 말하는 의사말씀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놀라셨고, 남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충격을 받더라구요. 시큰어머니께서 10년 가까이 중풍과 치매로 고생하시다 가신지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온 집안의 고통과 모시는 분의 어려움을 눈으로 보아 알기에, 큰 며느리인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벅찼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당신 병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는 의사, 자식들에게 무척 화를 많이 내었습니다. 감정의 변화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큰며느리인 저에게는 너무 심했죠. 어머니 아프시니 온 집안의 눈총은 저에게 왔습니다. 또 감당해야 할 것들이 전부 제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참 서러웠습니다.
 
좀 좋아지나 하면 다시 심해지고, 병원과 집을 오가기를 여러 번. 3년차에는 남편마저 와상풍 (안면근육마비) 증세를 보였습니다. 병원에서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하기야 효자인 남편은 어머니가 치매로 당신 이름도 모르고 자식도 몰라 어~~~ 어~~ 하고 다니시고 거동을 못하니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혹시 어머니 충격 받을까봐 남편을 다른 병원에 입원시키고 어머니 병원으로 가는 길에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큰애는 사춘기라 예민하고 작은 애는 초등학생이라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고, 회사는 바빠 휴가를 낼 수 없고. 어머니는 딸 둘, 작은 며느리가 있는데 꼭 큰며느리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찾아 난리니 집안은 집안대로 말이 아니고 몇 년을 병원신세 지니 통장은 온통 마이너스로 물들어 있고 눈물이 너무 많이 흘려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길 한쪽에 세우고 한참을 울다보니 나라도 버티어야 우리 집이 살지 이러다 다 죽겠다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어머니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들은 왜 안 오냐고 말씀은 못하면서 보챕니다. 그래서 출장 갔다고 말했죠. 치매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찾고 책을 구입해 읽었습니다. 그러다 내린 결론 꾸준한 치료와 가족의 사랑이 최고의 약이라는 것. 정신을 차리니 울 눈물도 없었습니다. 아니 울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겨우 어머니도 당신의 처지를 인정하시고 병원 치료에 순응하시고 제가 만들어준 낱말카드를 읽었습니다.

어느 날 지켜 침대모서리에 잠깐 기대어 졸고 있는데 비몽사몽으로 어머니 소리가 들렸습니다. 며느리....... 며느리... 치매로 말을 잊었던 어머니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분명하지는 앉지만 말씀을 하신다는 것. 내가 누군지 몰라 아줌마 하실 때도 있고, 딸을 보고 누구세요? 해서 울음바다를 만들기도 했는데 제가 며느리라는 것을 알아 보시더라구요. 남편도 다행히 한 달 만에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오는데 매일 다니는 길에 벚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다니는 길에 개나리꽃과 벚꽃이 만발했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남편 퇴원시키는 날 겨우 보였으니 참 우습죠. 어머니 몸이 좋아져서 집에 모셔놓고 일요일을 하루 종일 잠만 잔 적이 있었습니다. 피곤에 지쳐 잠든 저를 식구들도 깨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작은애가 저를 보고 "엄마! 저도 엄마 늙으면 잘 할게요" 하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힘이 되던지...

처음에 할머니가 치매로 힘들게 할 때는 철없는 애들이 할머니 밉다고 소리 지르고 난리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를 이해하고 고생하는 엄마아빠를 보고 느꼈나 봅니다. 치매에는 가족 사랑이 가장 좋은 약.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즈음 어머니는 딸이 저에게 엄마 하니까 어머니도 제 가슴만지며 “엄마”합니다. 시어머니께 저는 엄마 같은 존재로 보이나 봅니다. 며느리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찾는 어머니, 어머니 무릎 베고 누워 있는데 낱말공부하다 ‘사랑한다’ 는 글을 읽으시고는 내 머리 쓰다듬으며 "며느리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네요. 어머니와 비슷한 시기에 발병하신 분들은 지금 자리에 누워 대소변 받아내는데 어머니는 당신발로 화장실 가시고 당신 손으로 식사하십니다. 며느리가 만들어준 보물 1호 낱말공부는 하루에 2번 잊지 않고 하시고, 매일 재활운동 열심히 하십니다.
 
벌써 7년째.
하하하 하하하, 어머니 웃는 것을 보니 ‘웃자’라는 단어카드 들고 계신가 봅니다. 많이 웃어야 건강하니 일부러 웃기기도 하지요. 옷마다 달아주었던 이름표는 이젠 서랍 속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어머니는 당신이름, 주소 다 알고 있습니다. 방치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환자와 가족 같이 노력하면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보여주셨습니다. 

치매.. 어느 집이나 당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이해입니다. 그리고 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 엄마니까, 내 부모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모시는 데 뭐가 어렵다고...... 그런 말은 하면 안 됩니다. 한번 모셔보세요. 우리 집도 한 달 모셔보더니 요양원 보내자는 말이 나오더라구요. 부모님은 요양원보다 자식들 품에서 같이 있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어머니 눈빛으로 압니다. 시어머니 덕분에 친정어머니께 잘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실 때 잘하자, 돌아가시고 나서 우는 바보가 아니라 살아계실 때 잘하자.....

이젠 낱말 하나로 다른 것까지 연결시킵니다. 더 악화되지 말고 지금처럼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